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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독후감 . 서평

기름부으심 Anointing (서평/독후기/리뷰)

기름부으심
카테고리 종교 > 기독교(개신교)
지은이 손기철 (규장,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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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제 삶의 한 부분을 써서, 주님의 사랑과 영광과 은혜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갖는 것이 참 즐겁고 감사합니다. 저는 곧잘 신앙의 선배들이 추천해 주는 책들을 읽곤 하는데, 이번에는 쿠가 아닌 킴의 추천입니다. 새롭죠? 제가 주도적으로 구입한 책들도 있는데 모두 읽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하하.

 

이 책은 손기철 장로님이 쓰신 책인데, 사실 처음 50쪽 정도를 읽을 때는 일부 언급과 표현에서 약간의 어색함을 느꼈습니다. 좀 더 읽으면서 적응을 했지만요. 지나고 보니 이 책의 내용들이 낯선 개념이라서 그랬던 것은 아니고 저자가 사용한 언어를 통해 표현해 본 적은 없어서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도다운 건강한 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삶의 흐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가운데 그것들이 녹아있죠. 이번 독서는 바로 이 부분에 대한 자기 점검과 더불어 언어 표현의 훈련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상황을 똑같이 겪더라도 그것을 나의 언어로 잘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이해할 때와 그렇지 못할 때. 마음의 기쁨 차이가 큰 것 같아요. 더구나 글쓰기를 좋아하는 저는 잘 표현해냈을 때는 정말 기쁘기도 하고, 그렇지 못했을 때는 ‘아이참 바보 같아. 이게 뭐야.’하고 조금 시무룩해질 정도에요. 후자의 경우에는 ‘그냥 말하지 말 걸.’하고 후회하기도 하죠.

 

 

사실 저는 이달 초에 오랜 시간 몸담았던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로 옮기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그 대상을 찾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한국 교회에 덕망 있는 영향력을 끼친다고 인정받는 교회들을 골고루 순방하면서 교훈도 얻고 인상을 느끼기도 하며 참된 교회다움에 대해 더 깊이 묵상하려는 이유도 겸해 매주 오전 예배를 타 교회에서 드리고 있습니다.

 

14일에는 친구의 추천으로(안 그래도 존경받는 분이시지만) 김남준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열린교회에 갔고, 21일에는 서빙고 온누리교회 그리고 28일에는 강남역 가까이 있는 사랑의교회에 방문했습니다. 돌아오는 9월의 첫 주일에는 이재철 목사님의 귀국 첫 예배에 맞춰 100주년기념교회를 찾을 예정입니다.

 

특별히 21일은 고 하용조 목사님의 추모 예배 마지막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분께서 남기신 설교를 영상으로 나누는 것으로 설교 시간을 대신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영상에서까지 저를 콕 찌르시더군요. “젊은 분들 혼자 살지 마세요. 반드시 우울증에 빠지고, 삶이 비참해집니다.” 저는 혼자 살 뿐 아니라 가족과도 단절 상태에 있거든요. 그렇다고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고요. 아무튼 저는 주님의 사랑을, 그 생명을 알지 못한 채 마약을 비롯한 다양한 중독에 빠지는 사람들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약물 쪽은 아니지만 물질 등의 영역에 있어서는 저도 일정 수준 중독을 경험한 적이 있고 가르치시고 회복시키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거든요.

 

전적으로 주님의 보호하심 덕분에 저는 그러한 어려움을 그나마 비교적 잘 이겨내고 있을 뿐, 그러한 어려움이 실재하며 결코 그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도 않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살며시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기억이 떠오르네요. 주님께서 회복의 길을 걷게 하실 것을 바라고 믿고 기다립니다.

 

사도행전 2장 후반부를 본문으로 교회공동체의 모습에 대해 설교하셨는데, 그 내용도 은혜로웠지만 예배를 마칠 때 즈음 되니 ‘아, 이 책의 언어는 온누리교회의 언어의 연장선상에 있구나.’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당시 반 정도 넘게 읽은 이 책의 저자도 온누리교회의 장로이셨던 거죠. 그러면서 이 책의 표현에 대한 어색함도 덜고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말로 ‘성령을 받는다.’라는 표현이 거듭남과 성령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의 능력 모두에 쓰이는 등 잘못 이해될 소지도 있는데, 초반부에 그런 부분들을 꼼꼼히 보면서 읽다 보니 약간은 예민했던 것 같아요.

 

 

저자가 전해주는 이야기의 핵심은 나에 대한 온전한 자각과 더불어 비움, 채움, 나눔, 드림으로 이어지는 삶의 흐름이 꾸준히 이어지고 또 자라나야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단순하게는 이러한 흐름의 일부분에 대해 생각하기는 하지만 놓칠 수 있는 부분들도 많은데, 꼼꼼히 짚어가며 잘 전해주려는 열심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비움에 대해 읽는 것이 가장 불편했죠. 내용도 적은데 조금씩 읽다가 덮으니까 오래도 걸렸고요. 먼저는 내 안에서 상처, 쓴 뿌리로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을 피하지 않고 대면해야하는 부담이 있었고, 또 이런 이야기는 그냥 ‘그렇구나.’해서 될 일이 아니라 면밀히 나의 삶을 돌아보고 적용하는 일이 중요했기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핵심 중 하나가, 온전히 비워내지 못하면 온전히 주님의 은혜로 채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채우지 못한 채로 누군가에게 나누기를 기대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겠죠. 삶의 영적인 측면에서 답답한 정체를 느낄 때 이를 막연히 대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더 이상은 나를 채우시고 주장하실 수 없게 내가 온전치 못한 것들을 끌어안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도 하실 수 없는 일이 있다는 말을 기억합니다. 그분께서 전능하지 않으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분께는 분명한 그분의 성품이 있으시기에, 그에 어긋나는 행동은 그럴만한 힘이 있어도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를 원하실 때, 우리의 마음을 원하실 때는 기계적 복종이 아닌 진실하고 기쁜 마음으로 그리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마음으로 내 안을 깨끗이, 거룩하게 주님께 드리지 않는 부분들을 통해서는 주님께서도 사용하시기 어려운 것입니다. 먼저 해야 할 일들이 있는 것이죠. 제가 아는 주님은 모든 것을 순식간에 해낼 힘이 있지만 세밀한 과정 모두를 소중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요, 맞습니다. 비움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향력과 능력 아래에 사탄의 권세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가 우리 자신보다는 훨씬 강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CCM 가사 중에는 사탄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내용의 표현들도 있는데, 틀린 가사라고 할 수는 없지만 고백하는 입술은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능력으로 그를 묶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아주 우스운 존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따금 거실에서 쉬거나 청소를 할 때 올레 TV의 드라마 다시보기를 이용하는데, 미스 리플리라는 드라마에서 악역으로 등장하는 한 인물이 이런 대사를 했습니다. “진실은 아픈 거거든. 그래도 알고 싶어?”

 

네. 아플 수 있죠. 그런데 그 아픔을 딛고 용서하고 인정하고 도리어 사랑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를 도우시는 것이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미쁘심을 찬양합니다.

 

비록 매우 세밀한 부분에 있어서는 선뜻 완전한 동의가 어려운 내용들도 아주 조금 있기는 합니다. 참고로 사용된 성경 본문의 본래적 의미와의 연관성, 사도 시대 이후 어떤 은사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지속되는가에 대한 이해 등이 있을 텐데, 그러나 그것은 먼저는 제가 아직 미숙해서 곧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을 테고,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은사의 영역이 매우 다양한 측면도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입장이 조금씩 다른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결국 저자가 마음을 다해 전하고자 하는 이 원리의 큰 흐름에 대해서는 정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수 없고, 이렇게 진지하게 삶을 살아가는 선배 그리스도인이 계시다는 것이 무척 감사합니다. 실제로 옛 사람의 모습을 비우고, 새 사람을 자라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로 채우며, 그것을 나누고 또한 주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일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일어나야하는 일이 분명합니다.

 

특별히 저처럼 자칫 지성적 측면에 지나치게 균형을 빼앗길 소지도 있는 경우에는 이러한 실천적 권면의 내용이 더욱 유익했던 것 같습니다. 그분의 어떠하심, 그분의 역사의 흐름에 대해 누구보다 민감한 관심과 애정이 있으면서도 삶을 통해 그분의 은혜를 뿜어내는 일에 미약하다면 그것은 건강치 못한 불균형일 것입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찬양으로 섬길 수 있었던 것, 중학생들의 담당 교사로 섬길 수 있었던 것도 제 신앙의 균형에 있어 큰 유익이었던 것 같아요.

 

 

오늘은 또 다른 의미에서도 특별한 날입니다. 제 삶의 절반 이상을 몸담은 교회의 사모님께 제 결정에 대해 이야기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독서의 시간은 이 순간을 위해서도 제 마음을 새롭게 하는데 유익했습니다. 솔직히 떠나는 입장에서 몇몇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보여준 모습에 대한 실망감 등이 없지 않아 있었고 판단하는 마음, 정죄하는 마음이 자꾸 생겨나려 했지만 비움에 대해 읽으면서 그 미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데 많은 도움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교회다움을 향한 걸림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사모님으로서는 기쁠 리 없는 직언들을 하기는 했지만, 그 서로의 대화 가운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중과 배려가 있었다는 것이, 서로 축복하며 대화를 마칠 수 있었다는 것이 무척 감사합니다.

 

얼마 전 안부를 묻는 대화 속에서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스치듯 “별 다른 게 있어서 사나, 마지못해 살지.”라는 말을 했습니다. 바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가슴이 어찌나 아팠는지 모릅니다. 우리네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애환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소망 없음’이 아닙니다.

 

이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그 기름부으심으로, 그 친구에게도 주님의 은혜의 능력을 흘려보내고 싶습니다. 주님 주시는 간절한 마음으로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