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독후감 . 서평

회중을 춤추게 하는 예배 인도자 Guiding Your Church Through a Worship Transition (서평/독후기/리뷰)

회중을춤추게하는예배인도자
카테고리 종교 > 기독교(개신교) > 기도/설교/전도 > 의식/성극
지은이 탐 크라우터 (예수전도단, 2006년)
상세보기

아마도 제가 우리 성문교회에서 처음 3부 찬양예배를 인도한 것은 2009년 1월 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달 즈음 지나 2월에 한 권의 책을 구입해서 공용 세탁실로 빨래하러 갈 때마다 조금씩, 정말 조금씩 하지만 예배를 향한 간절함을 붙들고 읽어나갔는데 그 책이 바로 이번에 정리할 ‘회중을 춤추게 하는 예배 인도자’입니다.

저는 지금도 배울 게 많은 애송이입니다만 2009년 초에는 얼마나 더 어설펐을까요. 제가 섬기는 교회처럼 규모가 작고 노령화가 국가평균보다도 빠르게 진행된 곳에서는 다정다감하게 모든 성도가 교제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역할 모델이 될 만한 훌륭한 인재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뭔가를 개척한다는 것은 큰 은혜가 따르는 일이지만 그 섬김이 고된 것도 사실이기에 보통은 꺼려하기 마련입니다. 자연스러운 일이니 불평할 일은 아니지만요.

무엇보다 본격적으로 청소년 찬양팀이나 메인 찬양팀을 이끌기 시작하면서부터의 약 2년은 제게 많은 생각과 시도, 학습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했습니다. 때에 따라 예배를 마음과 시간을 쏟아 준비하고 실제로 예배를 드리는 순간에도 동료 및 성도들과 잘 소통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 영광을 돌려드렸다는 마음이 들 때에는 너무나도 기쁘고 벅차오르기도 했습니다만, 원인은 다양했겠으나 때때로 그렇지 못했을 때는 심히 마음이 무거웠고 아주 가끔은 예배준비에 트라우마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예배를 즐거워하고 말씀을 사모하기 시작했던 때가 2005년 전후였는데, 직접 예배를 인도하기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난해함이었습니다. 그 전의 모든 예배 인도자들이 모든 면에서 충실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적어도 저 자신은 어느 정도의 부족함을 발견하더라도 주님 안에서의 형제애로 얼마든지 포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예배의 순간에 나의 마음만 잘 다잡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과 동료들을 살피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죠. 먼저의 경우에는 제 그릇이 그럭저럭 충분했지만 다음의 경우엔 제 그릇이 너무도 작고 부실했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을 떠올려 보면, 뭔가 충분하지 않고 개선의 여지가 너무도 많다고 느끼는데, 솔직히 예배 인도에 대한 깊이 있는 조언과 함께 방향성을 제시해줄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인재가 없었습니다. 저보다 앞서 팀을 이끌었던 친구에게도 많은 안타까움을 느꼈었는데, 그를 리더로 세운 분들이 그에게 필요한 예배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과 분별력을 전해주려고 꾸준히 노력했다면 훨씬 더 낳은 섬김을 담당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었습니다. 물론 어느 자리나 본인의 책임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주변에서 도와야 할 이들의 책임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딱히 악의는 없었더라도 말이죠. 저라고 핑계가 전혀 없겠냐마는 좀 더 사랑으로 무릎으로 기도해주지 못했던 것이 미안할 따름입니다.


네. 이제 어설픈 예배 인도자들에게 있어서 이 귀하지만 무게감 있는 자리를 감당하는 것이 여러모로 쉽지 않다는 점은 그만 적어도 될 것 같습니다. 좀 더 다양한 에피소드들도 많지만 우리는 이전 것을 교훈삼고 돌아보되 지금과 미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기쁜 순간 뿐 아니라 아픈 순간까지도 그 모든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기쁘신 가운데 택하신 모든 자녀들에게 허락하신 과정이라면 그 흐름에는 회복과 성취와 올라섬의 순간이 분명 오게 될 것임을 약속 가운데 믿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책의 소중함을 다뤄야겠습니다. 먼저 저자는 전체적인 내용의 순서를 정하는 일에서부터 기본에 충실했습니다. 첫 장이 예배의 기초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갖는 우선성을 먼저 다루며 곧 이어 두 번째 장이 기도의 중요성을 다루는 것만 봐도 느낄 수 있죠. 이렇게 성경에 기초해서 예배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하며, 매 장마다 실제적인 예를 들어 그릇된 편견을 부수고 좋은 견해를 제시해줍니다. 바로 제가 너무도 원했던 이야기들입니다.

청소년, 청년, 장년 심지어 교회의 중직을 담당하는 일부 분들까지 가릴 것 없이, 대다수의 사람들과 우리의 예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저는 곧잘 머리가 너무 아픕니다. (피곤해진다는 뜻입니다) 왜냐고요. 대체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초한 균형 잡힌 시각 없이 일부분에 대한 시각만 가지고 무게중심이 흐트러진 채로 열변을 토하거나 조소를 흘릴 때가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훌륭한 안목으로 좋은 조언을 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거의 모래사장에서 진주를 발견하는 확률입니다.

예를 들면 전체 기독교를 놓고 보았을 때는 적용될 수 있으나 굳이 모든 교회가 따를 필요는(일부 교회가 잘 해내면 되는) 없는 기준을 필수적인 것으로 오해하거나(본인의 취향이 많이 반영됩니다) 뭔가 부족한 현상의 원인을 예배 스타일이나 시스템적인 면에서만 찾는 경우입니다.

이 책에서도 논하고 있지만 예배 스타일은 반드시 시대의 최신을 달려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우 고전적인 형식의 예배라도 구성원과 잘 어우러질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형화된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과의 어우러짐이 핵심입니다.


저희 교회 같은 인구 비율이 참 곤란한 예입니다. 저자는 어설픈 중간적 스타일의 예배는 어느 쪽도 만족시킬 수 없고 불편하기만 할 뿐일 때가 많다는 점을 적절히 지적합니다. 차라리 예배를 두 번 나눠서 드리기를 권장하지요. 고전적 예배를 한 부 드리고 현대적 예배를 한 부 드립니다. 성도들은 본인의 정서에 맞게 택해서 예배를 드려도 좋고 모두 드려도 좋습니다.

하지만 저희 교회에서는 적어도 주일만큼은 어린이와 장년을 제외한 나머지는 손님이자 들러리입니다. 예배의 초점도 설교말씀의 초점도 장년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저희도 유치부와 초등부 예배가 별도로 있습니다만 청소년과 청년이 문제입니다. 토요일과 주일에 나름의 모임이 있기는 합니다만 기대치에 비해 투자는 너무도 적습니다. 그리고 나름의 모임은 그야말로 보조 수준이기에 청소년과 청년 모두 주일 예배를 오전 오후 전부 드릴 것이 권장됩니다. 그래도 함께 예배를 드리면 은혜가 없지 않겠습니다만 아무래도 많이 아쉽지요. 그만큼 저는 시기에 맞는 적절한 수준의 설교와 나눔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아쉬움의 원인이 적은 투자에 만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 규모와 여건에서는 한계였기 때문일 것을 압니다. 그래서 누구도 쉽게 탓하지 못합니다. 저부터가 더 겸손히 한 알의 밀알이 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이 특이한 인구 비율과 문화 충격의 차이가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21세기의 성도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 도대체 찬양 예배를 어떻게 구성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어르신들께서 인터넷이 일으키고 있는 변화의 흐름이 약 200년 전 나타났던 그 산업혁명보다도 훨씬 거센 놀라운 변화의 바람이라는 것을 예민하게 느끼실까요? 반대로 청소년들은 이 짧은 역사를 가진 변화를 그저 일상으로 느낍니다. 이러한 문화인식의 차이는 전반적인 삶의 영역 모두에서 나타나며 음악도, 특별히 찬양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흔히 준비 찬양이라는 표현으로 예배에 대한 얕은 이해를 쉽게 드러내고는 하는데 이는 30세를 AD 2000년 이전에 경험한 사람들이 겪어온 한국 기독교 문화가 긍정적인 모습도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미숙한 부분도 많았음을 보여주는 반증입니다. 말씀을 향한 뜨거운 열정은 멋집니다. 기도도 그렇고요. 갖가지 다른 은사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지나치게 비대해지거나 축소될 경우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온전히 기능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찬양이 예배 안에서 갖는 무게감도 모두가 다르게 느낍니다. 곡의 장르에 대한 편견도 천차만별입니다. 그나마 다른 이들의 이해를 공감하며 하나된 토대를 만들려는 의지도 희박합니다. 저희 교회의 상황에 비추어 굉장히 암담하게 서술했습니다만, 정도의 차이에 따라 쉽게 수용할 수 있는 범위인지 아닌지의 여부만 다를 뿐 대다수의 교회에서 피할 수 없는 딜레마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지혜롭게 예배를 생명력 있게 가꾸어가며 하나님의 기쁘신 뜻 안에 거할 수 있을지에 대해 다양한 조언들을 해줍니다. 비록 저희 교회의 경우는 매우 난감한 경우에 해당해서 당장 시원스러운 개선을 얻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저는 3년 후, 5년 후, 10년 후를 소망하며 내다봅니다. 우리 주님은 시간의 주인이시며, 지금도 일하고 계시니까요.


무엇보다 이 책의 다양한 예시와 조언을 통해 예배 스타일의 방향성에 대해 도움을 받았는데, 솔직히 초기에는 전통적 찬양 스타일과 현대적 찬양 스타일을 반씩 섞어서 중간적 형태이지만 모두가 수긍할만한 음악 스타일을 목표로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이상과 현실의 벽일까요? 쉽지 않더라고요. 찬송가를 부르면 아주 유명한 곡이 아닐 경우에는 젊은 층이 어색해하며 잘 따라오지 못합니다. 반대의 경우에는 장년 층이 소외감을 느끼고 표정이 굳어집니다. 물론 저자도 언급했듯이 전 연령층이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받아들이고 나를 양보할 준비가 된 아름다운 공동체에서는 이런 의도가 통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시점 상 ‘이미’와 ‘아직’의 긴장 상태에 있습니다. 이미 예수님이 오심으로 시작은 되었으나 다시 오실 때의 완성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교회마다 어느 과정 선상에 있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만 초보적인 경우에는 당장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결국 저 스스로의 경험에 의해서나 책의 적절한 조언에 의해서나 주일 찬양 예배는 일단 전통적인 스타일을 지키되 그 스타일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가꾸는 쪽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전통가옥을 아무리 가꾸어도 전통가옥일 뿐이지만 훨씬 더 사람이 지낼 만은 할 테니까요. 어설프게 곡을 섞느니 통일성을 잃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여정을 위해 낫다는 결론입니다.

이 책에서는 찬양 예배의 시간을 여정이라고도 표현하는데, 함께 찬양 예배를 드리는 것은 단순한 가사와 리듬의 반복이 아니라 그 곡에 담긴 고백과 마음 드림을 주제에 따라 공유하며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올바른 여정이 되려면 찬양의 주제가 감사에서 회개로, 경배로 이어질 때 모든 성도들이 동일하게 같은 이동을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영원한 해답이 아니라 교회가 약 2~3년 후 새 예배당으로 이전하기 전까지의 방안입니다. 그 때는 우리가 함께하는 여정의 구성원 비율에 따라 다시 조정을 해야겠지요. 그리고 청소년 예배의 경우에는 어설픈 혼합 없이 분명하게 현대적인 스타일을 가꾸어 갈 것입니다. 제가 꼭 지금처럼 리더의 자리에 있지 않게 되더라도 할 수 있는 한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했던 예배의 기초들 외에도 실제적인 문제들 앞에서 어떻게 대응할 지에 대해서도 많은 예를 담고 있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시대의 사람들이 책을 좀 더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한 번 읽고 실패를 예방하면 좋겠는데 자꾸 저에게 달려들어서 ‘나와 함께 실패가 정말 일어나는지 시험해보자’고 달려드는 분들을 볼 때마다 힘이 듭니다. 좀 냉소적으로 표현했습니다만 진심으로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함께 읽어 나갔으면 좋겠고요.

특별히 목사님과 사모님을 비롯해 예배를 관장하는 요직에 계신 분들이 함께 이 책을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교리와 교회사에 대한 충실한 이해를 가진 분들도 오늘날의 급변하는 문화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찬양 예배뿐 아니라 전체적인 영향에 대한 문제도 잘 다루고 있기에 약 2~3년 뒤를 바라보고 있는 저희 교회의 신축에도 긍정적인 밑바탕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이 진정한 핵심인지를 인식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과 위로를 얻었고 방향성에 있어서도 좀 더 나아질 수 있었지만 여전히 우리 교회에 대한 꾸준한 고민과 관심, 노력은 멈출 수가 없겠습니다. 정석에 대한 이해와 매번 다른 상황에의 적용은 또 다른 문제니까요. 그래도 훨씬 힘이 납니다. 모든 게 혼란스러운 채로 나아가는 것과 해결할 일들이 있더라도 확실한 이해가 바탕이 되는 상황은 참 다릅니다.

책 커버에 추천글을 남긴 네 분이(Darlene Zschech, Don Moen, Paul Baloche, Graham Kendrick) 그냥 쉽게 칭찬을 한 것 같지는 않아요. 제가 여러모로 많은 배울 점을 발견하고 멋진 모델로 삼는 분들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유익한 내용을 국가를 뛰어 넘어서까지 함께 나누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더욱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