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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내가 본 드라마 . 영화

사람 냄새 나는 드라마, 추노 - 추노의 작품성과 연출, 열연에 찬사를 드립니다.

엊그제 KBS 드라마 추노가 종영을 했습니다. 아쉽지만 이야기가 끝에 다다랐죠.
개인적으로 애착을 느낀 드라마다보니 느낀 점들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추노 공식 포스터



- 추노. 도망노비를 쫓다.

제가 접한 작품폭이 좁아서일 수 있겠지만, 조선시대 중반의 노비계층에 초점을 맞춰서 당시 사회 각계각층을 이루던 사람들의 각양각색, 딜레마, 아름답고 추한 모습, 그들 각각의 주인(최종편에서 대길 왈: 세상에 매여있는 것들은 말이야, 다 노비란 말씀이지)을 이렇게까지 잘 묘사하고, 또 생각하게 만드는 물음표를 던져준 작품은 처음입니다.

물론 왕실이나 양반이 중심이 아닌 의적이나 평민들의 이야기도 있었지만, 이 정도 작품성과 내용의 깊이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리스도 여러모로 한 발 내딛은 작품으로 평가 받듯이 추노 또한 소재 뿐 아니라 연출을 비롯한 다양한 면에서 지금까지의 작품들보다 한층 더 마음을 울렸습니다.


- 아름다운 연출.

가뜩이나 혼자 살고, 직장생활에 공부 등 여러가지를 하며 살다보니 추노의 모든 편을 꼬박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2주는 네 편을 놓치지 않고 봤지만요.

잘은 모르지만 장면마다 추노의 연출을 위해 정말 많은 이들의 노력이 들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대본도 좋았겠지만요. 후반부로 이야기가 달려갈수록 쳐지는 게 아니라 점점 더 끈을 잡아당기는 듯 했달까요.

초반부터 대길, 최장군, 왕손 3인방의 화려한 액션과 더불어 조연들의 익살맞고 애교 넘치는(방화백?ㅋㅋ) 감초 연기들이 계속 빛을 발했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라, 정말 짙은 표현을 향한 밑그림이었습니다.

대길의 아픈 사랑과 언년, 태하와의 삼각관계 아닌 삼각관계는 초반부터 잘 묘사되었지만..

업복이와 초복이의 입맞춤 장면, 한문을 잘 모릅니다만 각각 다른 글자가 업복과 초복의 볼에 한 글자씩 보이면서 단어를 만드는데.. 오히려 대사가 없으니 그 동안의 줄거리에 나타난 무수한 애환과 못다한 말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각오하고 궁궐 문 앞에서 난사 아닌 난사를 하는 업복. 이 난사 아닌 난사에 핵심인물만 셋이 나가떨어지죠. 권력의 노비 좌상. 권력의 노비의 노비로써 순진한 노비들을 데리고 놀았던 그 분 기웅. 송태하를 배신한 문관까지.

그렇게 이야기 내내 업복에게 헛꿈꾸지 말라고 구박해왔는데.. 마지막 업복의 쓰러짐을 보며 솟구치는 벅차오름을 주체하지 못하는 상노비.

그렇게 끈질기더니 마지막에는 송태하를 포기하는 황철웅. 본인의 어머니 앞에서도 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끝내.. 이 분의 연기도 대단했죠. 그토록 경멸해온 장애를 겪는 아내에게 가서 손을 잡고 오열합니다.

전문지식이 없어 잘은 몰라도 여느 드라마와 달리 영화 같은 카메라 기법도 훌륭했지만 그게 다가 아닌, 문학적 표현력도 멋졌던 추노였습니다.


- 사람은 모두 아픔을 품은 약한 존재.

추노에서 또 인상적으로 느낀 부분은 거의 모든 등장인물의 약한 구석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준 측면입니다. 추노의 이야기에는 완벽한 승리자는 커녕 최후의 승리자로 남는 인물조차도 없습니다. 모두가 약함을 앉고 누군가를 짖누르고 약함을 앉고 누군가에게 짖눌리다가 포효를 하기도 하고 약함을 앉은 채로 다른 이의 약함을 짊어지며 세상을 바꿔보려 하기도 합니다.

양반의 안정된 생활과 사랑하는 여인, 그리고 여인을 위해 품었던 꿈을 한번에 잃어버린 대길의 아픔. 애당초 꿈꾸는 것이 아픔일 수 밖에 없었던 언년의 아픔.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비굴하게까지 살아 남았는데 계속 죽어만가는 동료를 바라보며 또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가는 태하의 아픔. 평범하다면 평범하지만 때로는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음을 인정해야 하는 최장군의 아픔. 마냥 즐기는 게 대수라고 살다보니 그것도 한 때임을 인정해야 하는 왕손의 아픔. 애써 웃지만 사당으로서의 아픈 삶을 살아왔고 또 아픈 사랑을 시작해버린, 그리고 마지막까지 슬퍼버린 설화. 큰 소리 한 번 제대로 못쳐보고 바닥만 보고 살았던 수많은 노비들. 그리고 큰 소리는 떵떵 쳤지만 결국 돌아보면 참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류층들. 왕권을 가졌지만 표정이 어두운 왕. 위세있는 듯하나 짓는 웃음 하나하나가 쓰디쓴 좌상. 태하를 무모하게 여기며 어떻게든 자신을 합리화하며 살아가는 철웅인데.. 그가 기댄 좌상이 떠맡긴 장애를 겪는 아내. 지속적인 실패, 점점 짙어만가는 자신은 도구일 뿐이라는 인식.

말하자면 끝이 없죠. 아련해보이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고 따라가거나, 조금씩 정도가 차이날 뿐 외면해버리고 살아가거나.. 사는 모양새는 다양하지만 결국은 그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아픔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표현들이 추노의 매력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아픔을 가졌다고는 해도 마지막까지 소중한 가치를 향한 마음을 놓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에 좀 더 깨끗하고 건강한 미소가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태하의 미소, 업복과 초복의 미소가 예쁘죠.


- 있는 그대로의
시대
시대 조명.

이런 숨길 수 없는 약함들은 결국 추노를 사람 냄새 짙은 드라마로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 숨김이 없어 애착이 갈 수 밖에 없달까요? 화자인 드라마 추노와 보는 우리들 사이에 간격이 적으니까요.

저자거리의 주먹다짐이나 훈련받은 무관이 포함된 살전을 봐도 추노는 생각보다 현실적인 드라마입니다. 여느 드라마라면 주요 등장인물들의 강조를 위해 관군이나 군관 따위 그냥 나가리되기 십상이지만, 추노에서 등장인물의 성장배경에 따른 실력구분은 정말 철저해보입니다.

최장군이나 왕손이 저자에서 날리는 실력인 것은 맞지만 훈련을 제대로 받은 철웅에게는 밀릴 수 밖에 없는 모습. 정식훈련과 거리가 먼 사람 중에서는 기껏해야 대길 정도나 맞설 수 있죠.

산채에서 석견 데려오기를 실패하고 마지막에 송태하와 석견을 호위했던 무관들의 리더 즈음 되어보이는 그 또한 안쓰러울만큼 약한 검술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사실 아군이라고 다 강하라는 보장은 없는 거죠. 보통 드라마에서 아군을 묘사하면 세상 다 잡아먹을 듯 강한 모습만 보이다가 어처구니 없는 한 방에 아쉽게 쓰러져가는데(단지 상대가 비겁해서 진 것 마냥), 추노에서 그런 불필요한 배려는 없습니다. 실력 그대로를 발휘할 뿐. 삶 그대로를 표현해줄 뿐. 그대로만을 표현하는 노력이 추노가 보여준 최고의 배려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왕(인조). 제 기억에는 왕은 대체로 여인들에 정서적으로 많이 흔들리고 얼빵한 인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만 그래도 추노에서의 왕은 왕 다운 자기판단력을 보여줍니다. 물론 인조여서 이 묘사가 맞고 다른 왕이라면 얼빵하게 표현되는게 정상인 경우도 있겠습니다. 왕마다 다르니까요. 그래도 기억에 남네요.

초반에 이다해분의 노출수위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말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는 균형잡힌 시대 조명을 위해 많은 수고가 들었다고 느껴집니다.


드라마를 바라보는 제 입장은 어느 정도 하루 열심히 생활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의미도 조금은 있고, 드라마나 영화에 대한 전문가적 시각까지는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추노가 주는 최고의 선물은 역시 '최선을 다해 묘사한 있는 그대로의 시대상'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도 좋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제 눈길을 사로잡는 추노의 남다름은 여기에 있습니다.

극중 상황에 잘 맞는 MC 스나이퍼의 '민초의 난'이라는 곡도 참 좋았는데.. 지금 즈음 추노 제작진, 배우분들 날아갈 듯 하시겠네요. 수고하셨어요♡
유한회사 추노 잘 마무리 하시구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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