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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락: 요한복음 14:23~24
내용: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 인격은 어떤 것
  • 성경에서 인격적인 하나님을 발견
시작구: 23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종료구: 24 -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 본문 -


벌써 2009년의 마지막 청소년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12월 한 달, 어제에 이르기까지 성탄의 은혜를 감사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복되게 지내셨을 줄 압니다.
오늘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가 믿고 의지하며, 또 즐거이 섬겨야 할 하나님이 '인격적인 분' 이시라는 사실을 말씀을 통해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왜 하나님께 마음으로 무릎 꿇고 기도하기보다는 다른 방법을 더 많이 찾을까요? 왜 시편에서 다윗이 고백했듯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기보다는, 왜 이 기도라는 최고이며 최선의 은혜로운 방편이 선행되기보다는, 때로는 뒷전이 되고는 할까요?
 
그 이유는 우리를 돌보시며, 우리의 기도를 친히 들으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잘 모르기 때문이요, 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조금 밖에는, 혹은 잘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주제를 다시 한 번 합독해볼까요?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오늘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여러 모습 가운데 인격적인 하나님의 모습에 초점을 맞춰 마음을 열어보고자 합니다.
 
인격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세상에는 다양한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화론을 믿는 사람도 있고, 신은 있지만 어떤 강력한 힘이며 에너지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진화론을 지지한다고 하지 않고 믿는다고 했는데, 진화론을 파헤쳐보면 그 사람들도 일종의 신념으로 진화론을 대한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이론으로 진화론을 완벽히 증명할 수 없기에, 핵심이 되는 몇 가지 가정을 그냥 애써 믿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과학입니까? 이것은 신앙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어떤 무형의 강력한 에너지나 힘을 가리켜 인격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본능에만 의지하는 동물에게도, 그들이 비록 일정 수준의 판단력과 생활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인격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 인격은 너무나도 특별하고 영광스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 가운데 누가 인격을 가졌습니까? 오직 사람만이 그렇습니다. 만약 이 인격이, 동물이나 곤충에게도 있는 특성이었다면, 우리는 그것을 한문의 '사람 人'으로 표현하지 않고 달리 표현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 지성, 의지, 이성, 자의식. 즉 마음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이해하며, 추론하며, 스스로를 인식하는, 이런 것들이 있을 때 인격적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우리에게 왜, 어떻게 이러한 모습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 창조된 복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라는 표현보다는 우리가 신격적이라고 말하는 쪽이 보다 정확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인격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홀로 신격이십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죄의 문제로 하나님을 모르는 상태에 빠진 사람에게, 하나님은 신격이셔! 라고 말해봤자, 그 다음에 나올 반응은 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셔! 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이 표현을 썼을 때, 하나님을 모르는 그 사람은 '뭐라구? 뭥미? What? 그래서?' 이런 반응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순서를 잘 따집니다. 누가 먼저고 누가 다음이고 말이죠. 그래서 사실은,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계시며,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을 따라 계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이 신격적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모습을 닮았다' 이런 표현이 좀 더 정확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죄로 인해 하나님을 모르는 상태의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셔' 라고 말해주면, 최소한, 적어도, '아, 하나님은 막연한, 불가사의한 어떤 힘이나 에너지 같은 존재가 아니라, 나처럼 생각하고, 느끼시며, 사랑하고 나눌 수 있는 분이시겠구나!' 라는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겠죠. 그리고 말씀과 예배와 특별히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인해 주님을 더욱 알아가기 시작하면, 그 이상의 크고 놀라운 하나님이심을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기만 한 것 같은 사실을 자꾸만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이것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가운데에는 마치 하나님이 별로 인격적인 분이 아니신 것처럼 생활하는 모습이 곧잘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 휴대폰을 만지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어떨 때는(누군가에게는 웬만해서? 일지 모르겠지만) 곤히 잠들기도 하며, 부주의한 자세를 취할 때도 있고, 심한 경우는 다른 사람의 예배를 방해하기도 합니다. 물론 예배위원이거나 비슷한 입장에 있어서, 예배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신호를 주고 받는 용도로 휴대폰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 가운데 은혜를 받은 것을 순간적으로 옆 사람과 나눌 수도 있죠. 또 몸이 너무 피로하면 조금 졸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도 그런 적이 있죠.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편으로는 몸이 불편해서, 질환이 좀 있어서 흐트러진 자세를 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정말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하나님을 신격, 아니 신격은 제쳐두고 하다못해 인격적인 하나님으로라도 인정한다면, 예배 가운데 이런 모습은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을 원하는 분이신데,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요?
 
 
우리는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께서 인격적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죄에 빠진 우리가 그냥 자연스럽게는 하나님을 알 수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스스로를 우리에게 나타내십니다.
 
구약 성경을 떠올려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x ↺'. 하나님께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며, 우리와 교통하시는 분이시기에 이렇게 늘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먼저 다가오십니다. 또 모세가 처음 부르심을 받고 겁을 내며 주저할 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I am ~. 이 표현은 인격적이거나, 혹은 그 이상이어야 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신약 성경도 떠올려 봅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격려하시는 가운데 빌립이 주님께, '예수님.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시옵소서.' 구했더니 주님께서 안쓰러운 마음으로 대답하십니다.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의 표식과(떨기나무 같은) 음성만 듣던 가운데 구했기에 빠르게 지나가시는 하나님의 영광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본래 볼 수 없는 분이시지만 모세가 볼 수 있도록 스스로를 낮춰서 모세에게 나타내신 것이죠. 하나님은 이렇게 스스로 낮추시기까지 우리를 대하십니다. 하지만 빌립은 이미 예수님을 눈 앞에서 보면서도, 함께 먹고 마시면서도, 이 사실을 바로 알지 못하고 보여주시기를 구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하나님의 형상이요 본체십니다. 그런 우리 주님께서 친히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제자들과, 그리고 약하고 병든 사람들과 함께하시면서,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었던 하나님의 인격적인 면을, 그야말로 피부에 와 닿게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던 주님의 모습이 마음에 남아 있나요? 돌에 맞아 죽을 뻔 했던 여인 앞에서 말 없이 땅에 글을 쓰시던 주님의 모습이 마음 속에 새겨져 있나요? 사람들이 정죄하자 묵묵히 땅에 글을 쓰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와서 돌로 쳐라'.
 
 
이렇게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와 관계를 맺으시고, 대화하시며, 택하시고, 복 주시는 분입니다.
 
여러분에게 이 사실을 믿게 되는 주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인정할 때, 수긍할 때 마음의 문을 열어둘 수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계속 여러분의 마음을 두드리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또는 '얘야, 넌 연다고 열긴 했는데.. 너무 조금이잖아. 안전고리는 여전히 걸어놓고 들어오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들어가니~' 이러실지도 모르죠.
 
하나님께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기에, 여러분의 마음 문을 도끼로 부수고 들어가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가장 닮은 여러분을 소중히 인정하시고, 여러분의 마음을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너무나 당연하게도, 우리의 예배가 온 맘과 정성으로 드려질 때 하나님께서는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점점 더 그 자체로 예배가 되어갈 때 그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주님의 마음이 우리와 늘 함께할 것입니다.
Posted by One of Remn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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