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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락: 누가복음 1:39~56
내용: 두 여인의 성탄 찬가
  • 엘리사벳의 축복송
  • 마리아의 찬송
시작구: 39 - 그 무렵 마리아가 일어나 유대 산골에 있는 한 마을로 서둘러 갔습니다.
종료구: 56 - 마리아는 엘리사벳과 함께 석 달 동안 지낸 후에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 주제와 방향성 선정에 있어서 2008년 12월 생명의 삶 QT집의 성탄절 QT 가운데 한 편과 M.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설교와 설교자' 및 교리 시리즈, 두란노 서원의 어설(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시리즈 등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 본문 -


오늘 나눌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소망 가운데 기다리는 마음으로 지내는 대강절인만큼, 오늘은 성탄과 관련된 말씀을 주제로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비슷한 내용을 담은 세 제자의 책입니다. 그래서 어떤 책의 말씀을 나누면 좋을까 고심하다가 우리 청소년부에는 남자친구들보다 여자친구들이 많다는 점에서 예수님의 아버지 측에 중심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마태복음 보다는, 어머니인 마리아 측면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누가복음이 더 이해하기 좋겠다는 생각에 오늘 본문을 선정했습니다.

조금 전에 함께 읽은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두 여인이 등장합니다. 한 명은 (아이들의 대답을 살짝 유도) [엘리사벳], 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마리아~].

네 그래요. 오늘은 이 두 여인의 이야기에서 우리들의 신앙의 모습이 어떤 모습으로 자라가야할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문에서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갔을 때, 마리아가 무슨 말도 꺼내기 전에,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마리아의 뱃속에 있는 아기 예수님을 축복합니다. 엘리사벳의 뱃속에서 아기 세례 요한의 영혼도 즐거워서 뛰놀았고, 어머니인 엘리사벳의 영혼 또한 기뻐하며 마리아를 축복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늘 영적으로 민감한 상태를 위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모습은 늘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 가운데 허락되는 줄 믿습니다.

만약에 엘리사벳이 영적으로 무딘 사람이었다면, 이같은 반응을 보일 수 있었을까요? 아마 영적인 대화보다는, '마리아야 그 동안 피부가 많이 상했구나, 오른쪽 볼에 그 뾰루지는 또 뭐니~'와 같은 인사를 먼저 건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엘리사벳이 고백합니다. '내 주의 어머니'.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거나 공감해줄 수 없는 특별한 상황에 처한 마리아에게, 자신의 입장을 민감하게 이해하고 고백하는 엘리사벳의 말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요?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를 기억하시나요? 성도의 교통이라는 것은 바로 이 두 사람의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1층 카페 이름이 코이노니아 홀이라는 것을 다들 아실 것입니다. 이 코이노니아라는 말도, 친교, 사귐, 교통, 동반자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멘토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불완전하시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렇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아름답게 진실되게 교제하는 모습을 즐거워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과는 다투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만 바른 것이 가능할까요? 말씀을 들여다보면 불가능한 것을 금새 알 수 있습니다. 가장 큰 계명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4) 이지만, 그에 바로 뒤따라 오는 계명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인 것도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혹은 바로 지금, 내가 축복하고 위로해야할 형제자매는 누구인지를 마음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모두가 누가 먼저 내게 베풀기를, 마음쓰기를 바라기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도 못받고 서로 기다리기만 하겠죠.

그렇지만 우리 각자가 서로 먼저 손을, [어떤 손을](마음의 손을, 기도의 손을) 내민다면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 백성으로서 주님이 허락하시는 기쁨과 평안을 누릴 줄 믿습니다.

그러면 마리아의 찬송에서는 어떤 모습을 배울 수 있을까요? 우리는 늘 배워야합니다. 주님의 은혜 안에서 자라나서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 이르기까지' 우리는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짓누르는 스트레스와 아픔들 중에는 정말 우리가 주님의 자녀로서 견뎌야 하는 제자의 십자가도 있지만, 우리가 주님을 닮으려고 나아가지 못해서 불필요하게 겪는 것들도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나님의 참된 말씀이 저와 여러분을 자유롭게 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리아는 어떤가요? 마리아 또한 영혼이 늘 주님을 향하고 갈급해서, 그녀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알고 찬양했습니다.

사람은 원래 좀 자기중심적입니다. 얼마나 성숙의 과정을 거쳤냐에 따라서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의 일부분만을 보고 나를 판단하면 굉장히 예민하게 거부감을 느끼면서, 정작 나는 또 다른 사람이나 존재를 쉽게 판단하곤 합니다.

음.. 우리가 아이폰이 좋냐 옴니아가 좋냐~ 뭐 이런 주제는 좀 잘못 판단해도 그냥 그러려니 할 수 있습니다. 돈 조금 손해볼 수도 있는 거고, 거기에 목숨 걸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한다면, 우리 자신을 오해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우리 주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늘 조심스럽게, 하지만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을 바로 인식하고 바로 예배하고자 하는 겸손한 마음을 주님께 간구해야할 줄 믿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비천하다고 표현하면서 그런 자신을 크고 영광스러운 일에 써주시는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양합니다. 오늘 본문 속 마리아의 찬양을 보면, 마리아는 하나님이 능하심을 알았고, 거룩하심을 알았고, 긍휼하심을 알았으며, 공의로우시며 미쁘심도 알았습니다.

미쁘시다라는 표현은 '믿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 라는 뜻입니다. 물론 오늘 읽은 마리아의 찬양에 나타난 모습 외에도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라고 표현할 수 있는 점들은 더 많겠지만, 이런 표현들을 볼 때, 우리는 마리아가 하나님께 늘 관심을 향하고, 신뢰하고,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모습이기를 기대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지나서 11장에 이르면, 한 여인이 예수님께 고백합니다. "주님, 주님을 밴 태와 주님을 먹인 젖이 복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사람은 눈에 띄는 흔적이나, 표적에 더 집착하고 신경을 쓸 때가 많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보다 마음을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그리고 어떨 때 기뻐하시는지를 생각하는 사람을 더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자꾸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렵고 심오하기만 한 분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미니홈피로 놀러와' 라는 책에서 잘 표현했듯이, 배꼽이 빠질 만큼 웃기는 농담도, 흥미진진한 모험도, 가슴 떨리는 로맨스도, 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여러 면이 있는데, 우리는 그 일부분만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착각하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처럼,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더욱 풍성히 알아가며 큰 기쁨과 평안을 누리기를 온 맘 다해 소망합니다.

그리고 엘리사벳과 마리아처럼, 주님의 자녀들로서 우리는, 피상적이고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친밀함에서 멈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민감하게 느끼고 서로 나누며 기뻐하고 위로할 수 있는 모두의 관계가 되기를 진심으로 축언합니다.

스스로의 피드백 노트:

2부 순서 QT 형식이 아닌 예배의 순서 가운데 사회자 자리에서 말씀을 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몇 가지 안 좋은 습관을 발견했습니다. 제일 큰 것은 저도 모르게 문단과 문단 사이를 이어갈 때 '음...' 하고 소리를 낸다는 것입니다. 총 10분 정도 말씀을 전했는데, 3분 정도 걸려서야 스스로를 조정하고 고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본문을 준비할 때 좀 더 발음하기 좋고 편안한 단어를 골라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문학과는 또 다르니까요.
또 조금 떨리고 경외심을 느꼈던 것은, 기뻤습니다. 감히 말씀을 입에 담는데 기뻐할 현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준비하고, 친구들과 시선교환을 좀 더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Posted by One of Remn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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