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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메시지 . 성경 . 말씀

20분 연재) 기독교 세계관 2회 : 기독교 세계관의 바른 이해를 위한 기초

첫 시간(20분씩 두 번에 걸쳐 나눴으며 두 번째 시간에는 되새김과 강조 위주로 진행)에, 아래의 항목들을 함께 이해하는 시간을 갖고자 노력했습니다.
  • 우리가 비록 세계관이라는 단어를 입으로 내뱉어본 적이 없을지 모르지만 누구나 세계관을 갖고 살아간다
  • 매우 다양한 세계관이 있고 어느 정도 특정 기준에 의해 압축해서 구분해볼 수 있다
  • 세계관은 단지 이론적인 개념이 아니라 우리 개개인의 생활 속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의 세계관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 우리는 성경적 세계관을 공부함으로써 이 점검을 해나갈 수 있다

이번 시간에는 세부적인 내용을 하나씩 다루기에 앞서, 그렇다면 세계관 중에서도 '기독교 세계관이 가지는 특성은 어떠한가' 다루려고 합니다. 이어지는 글에서 괄호 속 단어는 주로 학술적인 표현이고 그 앞의 표현은 이해를 돕기 위해 사용한 쉬운(현재를 살아가는 청년에게 익숙한) 표현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이 세상이 있고, 또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존재의 사실을 인정(불교처럼 환일 수 있다고 보는 것을 부정)합니다. 

그리고 기독교 세계관과 비기독교 세계관 사이에는 비슷한 면(연속성)과 다른 면(반립)이 있는데, 근본적인 다름이 있음을 바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오해 가능성, Block-House Methodology).

그럼에도 우리의 일상에서는 비슷한 면을 발견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지난 시간 예를 들어 살폈던 전통적 인식('다리를 떨면 꼭 복이 달아나는 것인가?' 등을 비롯)과 일반생활양식 등에 있어서 많은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살면서 자연스레 스며든 습관적인 부분도 있고, 우리 각자가 성경을 통해 미처 비춰보고 반영하지 못한 부분들도 많기 때문(개인차가 있기는 하지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속적(일상에서 꾸준히)으로 각자의 세계관을 끄집어내 봄(외현화)으로써 잘못 자리 잡은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고, 이럴 때 이를 바로 잡는 과정을 통해서 온전히 세계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 왜 우리는 이렇게 세계관이라는 개념을 살피려 하나요?

이론적 동기:
신앙은 이해를 추구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똑같은 수준까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경에서 깨달으라고 말하는 만큼까지는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하며,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 인생의 일부분이 아닌 세계 전체에 있습니다.

실천적 동기:
세계는 우리가 살아가는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막연한 잠정적 결론에 의지해 살아가는 것 만큼 무모한 것이 없습니다. 


- 기독교 세계관의 측면들

ㄱ. 중생자(거듭난 사람)의 세계관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은 거듭남의 증거(정말 온전히 믿는 경우)인데, 따라서 보통 세상 사람이 아닌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ㄴ. 성경적인 세계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바에 기초해서 세계를 이해(천지창조부터 될 일까지)하고 또 생활에 반영해야 하는데, 따라서 성경을 잘 알려고 애써야 합니다. 질·양적으로 잘 알지 못하면 올바른 세계에 대한 이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장담할 수 없고, 이는 학업·직업 등 전방위의 모든 활동들을 비록 열심히 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히 담고 있습니다.

한 가지 열심히 배워야하는 것은 맞지만 지나친 적용주의는 조심해야 합니다.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려는 기본 방향은 좋은 것이나 지나치게 얽매이면 아래와 같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 이해를 위한 극단적 예 - 문득 성경을 꺼내 읽습니다. 어딘가를 펴가면서 무작위로 읽는데..
가롯 유다가 목 매여 죽었더라. (어.. 그런데 내가 이걸 어떻게 적용하지?)
너도 가서 그와 같이 하라. (얼랄라? 뭘 그와 같이 하라는 거죠. 주님.. 설마?)
네가 하려는 것을 속히 하라. (옴마야. 큰일 났네요.)


성경을 읽는 가운데 때로는 지금 읽는 구절의 직접적인 적용을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항상 그러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올바로 이해할수록) 세계에 대한 올바른 시각이 형성되는 것은 사실이며 이는 우리 생활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이 올바른 시각이(세계관이) 부족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어린 아이처럼 이리저리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잠시 끊고 다음에 20분 짜리 모임을 한 번 더 해서, 3분 정도 되새김에 쓰고 17분 나머지와 전반을 다루는 쪽으로 진행하는 것도 무리하지 않는 방법}


ㄷ. 영적인 세계관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로마서 8:5)'

특별히 이분법을 조심해야 하는데, 어떤 일은 꼭 영적이고 어떤 일은 꼭 육적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바르지 않습니다. 다만 그리스도인은 매사를 영적인 눈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식사는 육적인 것입니까?. 별 생각없이 '다 먹자고 하는 일 아닌가, 먹어야 살지' 같은 생각으로 하는 식사라면 육적이겠지만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린도전서10:31)'는 말씀을 품고 하는 식사라면 영적인 것입니다. 신학과 사역조차도 개인의 그릇된 포부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면 육적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어떤 행위 자체가 반드시 영적이거나 육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청년이니만큼 연애는 어떨까요? 데이트는 영적일까요, 육적일까요. 두 사람이 늘 기도함으로 서로를 만나고 사랑하고 말씀에, 성령님에 의지해 교제를 지속한다면 영적인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교회에 출석하는 두 남녀라 할지라도 육적인 연애일 수 있는 것입니다.

* 생각해 보기
대체로 그리스도인 커플이라도 딱 봤을 땐 '아, 저들이 역시 그리스도인 남녀라서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마냥 육적이지 않고 영적인 모습과 육적인 모습이 비슷하게만 나타나도 다행일까요?^^a

즉 우리의 과제는 신령한 그리스도인 답게 생각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사물을 영적인 것, 육적인 것으로 나눌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각자의 위치에서 매사(단 성매매나 인신매매를 비롯한 각종 어둠의 조직처럼 근본적으로 죄된 것은 제외 - 선교하러 갈 순 있겠지만)를 영적으로 일궈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시각을 갖춘 그리스도인 영화감독, 정치인, 경제인, 디자이너 등이 우리 가운데서 나와야 합니다.


ㄹ. 하나님 나라적인 세계관

앞서 다룬 세계관의 특성들을 알아가다 보면 자연스레 생기는 시각으로,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 나라로서의 관점이 있습니다. 세계는 하나님이 지으셨고 하나님의 소유인데, 앞서 나타난 이분법처럼 어떤 것은 하나님 나라와 관련이 있고 어떤 것은 없다로 나눌 수 없습니다. 목사, 선교사 등만 소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나름의 소명이 있습니다(종교개혁).

소명·은사 모두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이뤄가야 하는데, 결국 하나님 나라의 형상에 대한 바른 이해로 나아가야 합니다.


- 기독교 세계관의 틀

지금까지 나눈 기독교 세계관의 특성들을 알아가다 보면 '창조 - 타락 - 구속 - 극치'라는 공통된 틀을 보게 됩니다(아담과 하와만 경험한 창조된 인간, 그 후 수많은 타락한 인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죄를 해결하심, 그에 따른 구원,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이를 구원의 극치 - 완전히 회복되는).
세계는 타락했지만 애초에 창조된 세계이기에 창조의 특성도 불완전하게나마 가지고 있습니다(인간이 타락했다고 악마가 된 것은 아니듯).

그러나 이런 틀이 있다고 해서, 이런 틀만 있으면 올바른 기독교적 세계관은 아님을 조심해야 합니다. 창조부터 시작하는 역사적인 세계관을 온전히 인정해야 올바른 세계관입니다. - 어느 날(이미 시간이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창조된 세계가 아니라, 시간(세계를 구성하는 일부로써)과 함께 창조된 세계

더불어 타락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타락했으나 여전히 창조의 흔적이 있어서 스스로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아니면 절대불가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만이 가능케 하는가(자유의지론 대 노예의지론). 우리는 후자가 옳음을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음 3회에서는(2회도 두 번에 걸쳐 할 것 같지만) 이번에 다룬 기독교 세계관의 특성 중 중생자의 세계관에 초점을 맞춰서 중생은 무엇이고 어떤 변화가 있는지 나누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