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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소설이다.
무시, 차별이 아니라 화자의 소중하고도 유일한 친형이 지식인이다. 어쩔 수 없다. 코뮤니스트, 게슈타포 따위의 말을 들을 때 곧바로 연결된 시대가 그려지지 않으면 읽기 힘들고, 성서와 서양철학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없으면 주관을 갖고 읽기 어렵다. 故 이병주 작가도 감안하고 쓰셨을 것이다.

 

심미적인 소설이다.
사물을 말할 때 그것이 도시이든 사람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결코 외양만 가지고 묘사하지 않는다. 언제나 물질적 요소를 뛰어넘어 존재적 의미까지 엮어서 표현하는데, 그 문장들이 수려하다. 단지 글을 읽을 뿐인데 마치 보이는 것 같고, 냄새가 나는 것 같고, 만져지는 것 같다. 요즘은 잘 쓰지 않는 단어들도 곧잘 등장하지만, 거의 언제나 달리 대체할 수 없는 최선의 단어가 그 자리마다에 있는 느낌이다. 작품 배경상 한글과 한자, 독어, 불어가 뒤섞여 표현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말의 맵시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작가가 단어를 고르기까지의 애씀이 전해진다. 비단 예술과 여인의 아름다움을 묘사할 때 뿐 아니라 태초와 고대를 이야기할 때에도, 아니면 일상을 이야기할 때에도 또 미치기 직전의 고독을 이야기할 때조차 심미審美는 늘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철학적인 소설이다.
화자는 한국인이고 고향도 역시 한국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무대는 주로 이집트 북부의 유서 깊은 도시 알렉산드리아다. 사실 장소가 알렉산드리아라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이끌어내는 시간과 역사의 조각들이 무수할 테지만,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라는 시편의 노랫말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한국과 알렉산드리아의 지리적, 문화적 거리감은 독자로 하여금 결코 소시민적인 자세로는 이 이야기를 대할 수 없게 만든다. 비록 다해 봐야 120여 쪽 분량의 단편 소설이지만, 이 안에 인류와 세계의 근원에 대한 물음이, 역사의 동인과 방향에 대한 물음이, 삶과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 모두 처절하게 압축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그 접근은 명백히 현실적이다. 소설인 만큼 허구적 장치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고독과 고통 그러니까 인간의 실존에 대해서만큼은 지독할 정도의 현실감을 유지하고 있다.

 

스포일러를 피하면서 소설을 읽은 소감을 적기란 언제나 힘든 일이다. 읽은 직후의 감흥 탓에 표현이 과장되지는 않을까 조심하게 되는 것도 그렇다.
인연이란 익살스러운 구석이 있다. 언젠가 Ku가 이 작품에 대해 귀띔해 주지 않았더라면 수 년 전에 구입해서 책장에 넣어 두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무슨 변덕인지 어제처럼 갑작스레 끄집어내어 단숨에 읽어 버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참, 이 작품은 최근 읽은 단편 소설 <아르판>과도 공유하는 영역이 있다. 소설가 박형서의 아르판은 이 작품에 비해서도 더 단편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짧긴 하지만. 알렉산드리아로 때마다 날아드는 편지의 내용과 아르판에서 화자가 열변을 토하며 늘어놓는 자기변명의 내용은 거리가 있음이 분명한데, 정서가 미묘하게 닮았다. 둘 다 읽게 된다면 아마도 느낄 수 있을 것.
감사한 일이다. 작품에 묻어나는 누군가의 삶에 대한 고뇌가 전해져 오는데 그게 또 위로라니.

 

니체의 사상은 별로 와 닿지 않지만 이 표현 하나는 마음에 든다.
“스스로의 힘에 겨운 뭔가를 시도하다가 파멸한 자를 나는 사랑한다.”
이런 자가 한 달란트를 받아서 땅에 묻고 가만히 기다릴 리는 없거든.

 

아, 이 여름. 읽고 서평을 쓰지 못한 책이 다섯을 넘고 말았다.

 


소설 알렉산드리아

저자
이병주 지음
출판사
한길사 | 2006-04-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탈전통적이고 실험적인 소설담론을 취하고 있는 이병주 중편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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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ne of Remn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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