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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Lewis와 Martyn Lloyd Jones 이 두 영국 신사는, 주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온 세상을 바라보는 저의 시야를 시원하게 펼쳐 준 그리고 겸손과 깨달음의 기쁨을 풍성히 가르쳐 준 대표적인 스승들입니다. 이제 겨우 첫 만남일 뿐이지만, 20대가 다 저물어 만나게 된 자끄 엘륄Jacques Ellul 역시 앞서 만난 두 분 못지않게 부족한 저를 많이 깨우쳐 주게 될 것 같습니다. 루이스와 로이드 존스의 책들이 그랬던 것처럼, 엘륄의 ‘하나님의 정치와 인간의 정치’ 역시 요즈음의 저에게 큰 도전이었고 배움이었으며, 동시에 진실한 위로였습니다. 길이 좁으면 외로운 법이지만, 그 깊은 외로움 속에서 또한 우리 각자의 참다운 얼굴을 찾아 가기도 하니. 삶의 오묘함이란!


박영선 목사님이 ‘인격적 항복’이라는 설교에서 ‘이해인가, 항복인가?’라고 했습니다. 지적으로 다 깨달아져서 믿는 것이 아니라는 요지였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하나님 나라의 현존을 선포하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있어 신앙의 변호나 변증이 무의미하거나 불필요한 것이겠느냐마는, 그렇다고 해서 우리 인간이 지닌 지적 체계의 틀이 믿음의 실재와 신비를 궁극적인 수준에서까지 완벽히 설명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일견 아이러니죠. 반대로 이야기하면 궁극적인 수준에서 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주어진(계시된) 한도 내에서 변호하고 이해하는 것은 충분히 유익하다는 이야기니까요.

더욱 놀라운 것은 주 하나님, 그분의 나라 역시 실로 아이러니 덩어리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2천 년 전 우리 주님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미 이 세계에 임하였지만, 재림과 함께 이루어질 그 나라의 궁극적인 완성은 아직 오고 있습니다. 이미 평화가 임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전시 상황인 것입니다. 그분의 나라에서 나타나는 다른 원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묵은 것이나 율법의 참 뜻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어야 했으며, 믿음의 조상들―특히 기름부음 받았던 이들―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암시하는 모형이었지만 실로 그들 자신이기도 했습니다. 그분 앞에서의 전적인 복종은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자유로 이어지며, 우리는 그분 앞에서 무익한 종일 따름이지만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형제이기도 합니다. 오직 믿음이지만 그 믿음이 행함을 강권합니다. 오직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만 주 하나님을 알 수 있으나 그렇다고 성경 연구가 헛되지 않습니다. 홀로 주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시며 또 그분의 작정만이 궁극적으로 유효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은 자유로운 선택과 행동을 보장받습니다. 현재 그분의 나라가 지니는 ‘이미’와 ‘아직’의 긴장 속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임마누엘의 주님이시자 동시에 전적 타자이십니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의 인간적인 안목으로 바라볼 때 아이러니가 연속적으로 나타난다고 해서, 우리 나름의 지혜와 방법들로 이것들을 적당히 뭉뚱그려 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애매해 보이는 사실들을 개별적으로 모두 인정할 때 도리어 우리는 큰 그림을 똑바로 보게 됩니다. 이 순간이야말로 믿음이 요구되는 시점인 것이죠. 우리 수준에서의 논리만 갖고는 안 됩니다. 어쩌면 파스칼이 이야기했던 바로 그 ‘섬세纖細’가 필요한 시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서 얘기한 사안들은 참 아이러니하지만, 그 이상으로 미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우리의 관점은 불안과 아슬아슬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분의 관점에서는 분명 아름답고 완전한 안정 상태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 어떠한 문제의 발단도 함부로 그분의 책임으로 돌려 버릴 수 없으며, 반대로 그저 뒷짐 지고 관망이나 하시는 분으로 여길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실제 세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전부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라 해서, 아예 알려 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까? 게으르고 맹목적인 신앙을 변명한답시고 그런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엘륄은 열왕기하의 본문 속에서 분열 왕국 당시 이스라엘과 유다가 처했던 상황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이 취했던 정치적 행동들을 주목합니다. 때로는 이야기의 양상이 조금 애매해 보일지라도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하나님의 성실하신 개입과 인간의 자율적인 선택이 아슬아슬하게나마 서로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조화롭게 어우러져 그분의 뜻대로 역사를 일궈 나가는 모습을 포착합니다. 그분의 경륜과 통치가 인간의 자유와 충돌하지 않습니다.

엘륄이 보기에, 인간이 내리는 정치적인 선택이나 행동들은 그 자체만으로는 별다른 의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사회주의니, 자본주의니, 사민주의니 하는 특정 체제에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집착하는 것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유일하게 유의미해지는 순간이 있으니, 주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안에서 그것들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 순간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 인간의 무익함을 발견하고, 그렇게 그 무익함을 당신의 은총의 도구로서 승화시키시는 주 하나님의 오롯하신 성실을 발견합니다. 그런 우리조차도 당신의 동역자가 되게 하시는 그분은 또한 겸손하신 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정치와 인간의 정치

저자
자끄 엘륄 지음
출판사
대장간 | 2012-09-24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열왕기하 주석『하나님의 정치와 인간의 정치』. 열왕기하의 짧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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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ne of Remn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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