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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9 국치가 회복될 사건이 올 때까지 블로그 양쪽은 조의를 표하는 검정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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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5일에는 키노트로 소감을 정리했는데, 오늘은 다시 예전처럼 수필로 씁니다. 이번에도 키노트로 정리할 수 있는 이야기였으면 좋았을 텐데, 막상 해 보니 생각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까짓것 하면 되지!” 생각하시는 분들은 왜 바울이 고린도에 편지를 쓸 때 파피루스에 키노트 스타일로 자신의 주요 논점을 정리하는 대신 장문의 산문체를 써야만 했는지 30초간 생각해 보십시오. {농담이에요. ^^}

올해에는 교리를 탐구하거나 주해를 참고하는 시간을 줄이는 대신 성경 본문 읽기에 더 충실하려고 했고 실제로 어느 정도는 그렇게 했는데, 개역개정의 번역 수준 그리고 1세기 중반 고린도라는 특수한 상황과 지금의 저 사이에 발생하는 간격 등의 문제로 인해 주해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사도행전 이후 서신들을 가능한 시간 순으로 읽으면서 갈라디아서, 야고보서, 데살로니가전·후서까지는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으나 아무래도 고린도는 혼자 본문만 읽어서는 곤란한 부분들이 있음을 깨달았고 지금은 이 강해서를 접하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고린도전·후서가 어쩌면 몇몇 측면들에 있어서는 바울의, 또는 신약의 다른 서신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매력적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마치 위대한 예술가가 커다란 화포畫布에 걸작을 그려내듯 복음의 핵심 원리들을 총체적이며 체계적으로 그려내는 로마서와 비교해 보면, 고린도에 보내는 이 편지들은 인류의 상태, 율법과 죄, 이신칭의, 아담 기독론, 연합, 성화, 양자 됨 등 거의 대부분의 주제에 있어 비교적 단편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 히브리서처럼 그리스도께서 겸손과 사랑으로 이루신, 유일하고도 영원한 제사의 영광스러움과 그 효력이 어떠한지를 엄숙히 선언하느냐면 그런 것도 아닙니다.

도리어 바울은 시종일관 어르고 달래기 바쁩니다. 그러다가 종종 세게 나가기도 하고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그야말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멀쩡한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그들의 도전까지도 일일이 해명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허물투성이였던 고린도의 성도들조차 참으로 주 안에서 형제라 부르며 사랑하는 마음을 놓지 않았던 바울의 간절함으로 인해, 또 그의 안에서 그 사랑의 근원이 되어 주신 주님으로 인해 이 편지들은 이 편지들만의 독특한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이 편지들은 1세기 당시 고린도에 세워진 이방 교회 성도들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우리가 다시 그려 볼 수 있는 좋은 토대가 되어 줍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조목조목 짚어 주는 사항들은 모두가 추상적이거나 학술적인 내용이 아니고, 매우 일상적이며 피부에 와 닿는 문제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제시하는 가르침과 처방들을 통해 우리 또한 우리가 마주하는 21세기의 구체적인 상황들 속에 발생하는 문제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분별의 지혜를 배울 수 있으며, 또 그들이 도대체 어떤 문제들에 어떻게 걸려 넘어졌었는지를 살피면서 그들로 우리의 반면교사를 삼아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예비할 수 있습니다.

문득 고린도 성도들의 모습을 보며 미묘한 안도감을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마치 말썽피우는 동생을 둔 형처럼 말예요. “내가 암만 못해도 동생보다 못하겠나?” 이런 마음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마음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습니다. 우리 주님 비유에 맏아들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않고 동생은 “싫소이다.” 하더니 뉘우쳐 돌이키지 않습니까? 실은 나의 어떠함이 그들의 어떠함보다 나을 것이 전혀 없었음을 깨달을 때, 이 편지들 속에 나타난 주님의 선하심을 더욱 오롯이 바라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하루 휴가 때 구역장 형 내외분을 만나 저녁식사를 함께 했었는데, 당시 읽고 있던 말씀에 대해 잠깐 나누다가 고린도 성도들에 대해 민석 형이 농담 반 진담 반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난 그런(골치 아픈?) 사람들 싫어(웃음).” 물론 저도 웃으며 맞장구쳤고요. 맞습니다. 자타공인, 그들은 허물투성이였습니다. 그러면서 겸손하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지혜와 지식 자랑은 그들의 전매특허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런 그들의 호칭이 외인外人이 아니요 성도였다는 것입니다. 성적으로 문란했고, 우상 문제에 대해 이웃을 향한 배려 없이 자기 편한 대로만 처신했고, 기호에 따라 파당을 지었으며, 거저 받은 구원의 선물을 자신들의 공로인 양 우쭐해 했던 그들이지만 그래도 그들의 이름은 성도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원의 은혜가 지니는 다양한 시제들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고린도 성도들은 구원의 첫 열매를 받았습니다. 영적 세례를 받았고 미약하나마 믿음을 고백했으며, 성령님의 은혜를 입어 이런저런 은사를 외적으로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구원은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이루어져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옛 사람의 저항과 싸워야 했으며, 날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강권하심에 반응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매일같이 닮아가야만 했습니다. 마침내 주님께서 승천하시던 그대로 다시 오실 때에, 그들의 구원은 완성될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의 소망이 우리의 어떠함이 아닌 주님의 은혜라는 놀라운 사실이 바울로 하여금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내달릴 수 있게 했고, 그와 마찬가지로 무명한 자 같고, 죽은 자 같고, 징계를 받는 자 같고, 근심하는 자 같고, 가난한 자 같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소망과 담대함의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 나눔 때 성욱이는 특히 좋아하는 책으로 누가복음과 함께 고린도전·후서를 꼽았는데, 바로 이런 은혜 가운데 터져 나오는 바울의 영광스러운 고백들 또한 그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편지 내내 드러나는 바울의 깊은 영적 애증愛憎은, 이야기 속 그림들이 우리 마음 가운데 분명해지면 질수록 더욱더 우리의 마음을 녹아들게 합니다.


김 교수님의 이 강해서는 석의적 측면에서도 무척 탁월하지만, 무엇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추천할 만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성도들을 위해서도 적절한 주해서가 필요한데, 이 정도로 간결하면서도 올바른 내용을 풍성히 전해 주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입니다.

복음서 주석으로는 양용의 교수님의 책들이 내용상 참 훌륭하긴 한데, 보편적으로 권하기에는 신학적 문턱이 낮지 않습니다. 일단 독자가 특별히 애쓰지 않으면 읽기 지루하고요. 번역만 잘 되었다면 칼빈 주석이 괜찮다는 생각도 들지만 아쉽게도 최근 나오고 있는 규장의 Eerdmans 판본들도 만족스러울 만큼 매끄러운 번역은 아닌데다, 칼빈이 즐겨 쓰는 용어들에 대한 이해가 생기기까지 얼마간의 장벽이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이와 같은 현실을 감안했을 때, 김 교수님은 칼빈이 원래 쓰고 싶었던 방식의 주해를 무척 잘 해내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도 스트라스부르에서 쓴 로마서 주석의 헌정사에 주석의 여러 형태를 나열하며 모든 사람들을 위한 간결한 주석을 쓰는 것이 최우선적인 목표라고 했었으니까요. 실제로, 적어도 당시의 성도들을 위해서는 그 의도를 상당히 잘 반영했다고 생각하고요.

특히 주제를 넘길 때마다 “토론해 봅시다.” 란에서 제시하는 질문들은 우리로 애통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허물들이, 한국 교회에서 아주 현저하게 재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이 이러한 사실들을 깊이 깨닫고 돌이키기만 하더라도, 김 교수님은 그것을 자신의 상으로 여기실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의 상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9:18).” 아멘, 마라나 타.



고린도전서 강해

저자
김세윤 지음
출판사
두란노아카데미 | 2008-10-28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복음주의 신학자 김세윤의 『고린도전서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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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와 스타벅스 로고. 그 미묘한 어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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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ne of Remn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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