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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9 국치가 회복될 사건이 올 때까지 블로그 양쪽은 조의를 표하는 검정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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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을 때 이야기 속 계절을 따라서 읽는 재미도 꽤 쏠쏠하네요.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 오두막 이야기는 요즘처럼 몸과 마음이 몹시 웅크려지는 한겨울을 배경 삼고 있고, 재작년 이른 여름에 완독한 C. S. 루이스의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Till We Have Faces-이하 TWHF’도 눈부시게 따사로운 계절 속에서 이야기를 매듭지었죠. 곧잘 둔감해지는 제 감수성과 상상력을 감안할 때, 소설 속 주인공들과 같은 계절을 겪으며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도 참 괜찮다 싶어요. 아! 그럼 브루스 롱네커의 ‘어느 로마귀족의 죽음The Lost Letters of Pergamum’도 얼른 읽기 시작해야겠네요. 내년 요맘때로 미루기엔 선물로 받아 놓고서 출판사에 너무 죄송하고, 그 책 속 편지 교환은 약 10개월에 걸쳐 이루어진다고 하니 조급할 것도 없고요.
드라마나 영화 마니아들은 보통 스포일러를 끔찍이 싫어하죠?(또 성욱이가 생각나는ㅋ) 소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았고 또 읽을 계획이라면 제 글은 나중에 읽는 게 좋을 수도 있어요. 짧은 추천사는 인터넷 서점에도 많고, 전 제 글이 지인들과 보다 깊이 소통하는 작은 놀이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거든요. 그래서 시간이 닿는 한, 제 지성이 허락하는 한 이 책의 이런저런 면을 다양하게 다뤄 볼 거예요. 어쩌면 줄거리 자체를 흘리는 것보다도 독자의 순수한 첫인상에는 더 방해가 될지도 모르죠.

 

이 책은 루이스의 TWHF와 꽤 비슷하면서 많이 다르기도 해요. 둘 다 사람의 깊은 슬픔과 상처 그리고 허무와 절망을 깊은 관심 가운데 조명하면서(그 중심에는 반드시 ‘상실’이 있고요―초반에 살짝 나타나는 소소한 행복은 도리어 상실의 크기를 극명하게 만들고 말아요), 스스로는 결코 잠재울 수 없는 분노의 끝에서 신을 만나 치유의 길로 접어드는, 무척 놀랍지만 매우 실제적이기도 한 여정을 이야기하죠.
한편 저자인 영Wm. Paul Young과 그의 실수투성이 친구들은 루이스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요. 무슨 말이냐면, 루이스는 멈추는 일에 매우 철저해요. 실재를 잘 담아내는 것이 어렵다면, 차라리 다루기를 포기하는 성향이죠. 영광스러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각 위 사이에 어떻게 관계하고 교제하며 연합하시는지에 대한 것 또한 그 실재 중 하나에 포함될 테고요.
예를 들면 TWHF의 세계에서도 신은 매우 성실하게 본인의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그렇지만 그의 존재는 매우 은밀한 베일에 감춰져 있어요. 주인공은 인생의 적잖은 시간들을 합리적 의심의 노예처럼 살아가야 했고, 세상의 끝에서 만난 신 앞에서는 “가장 두렵고 가장 아름다운 분”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어요. 물론 그 순간으로부터 비로소 신과의 깊고 친밀한 관계가 시작되기는 하지만 그야말로 세상의 끝에서, 육체적 죽음의 뒷이야기로서만 주어져요. 실제로 루이스는 그 다음 이야기를 독자의 몫으로 남겨둬요. 그의 또 다른 책 ‘순전한 기독교’에서 약간 더 깊이 다루기는 하지만, 그조차도 성경이 다루는 수준과 본인이 경험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지 않고 조심스레 잘 멈춰섭니다.
그런데 영과 그의 친구들은 이런 측면에서 조금 위험하고 과감하게, 그러나 매우 경건한 마음으로 더 나아갑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인격을 각각 의인화해 표현함으로써 각 인격들의 행동 그리고 그들 사이의 대화 속에서 그 관계의 특별함과 아름다움을 드러내고자 애썼어요. 성부 하나님을 파파라는 여성 이미지로 표현한 건 특히 훌륭했는데(그런데 이름은 마마가 아니고 파파), 이재철 담임 목사님도 언젠가 잘 설교해 주신 것처럼 성부 하나님께 우리가 곧잘 잘못 대입하곤 하는 인간 아버지상(像)을 되돌아보게 해 줬습니다. 몇 가지 이유에서 그분을 향한 우리의 호칭이 아버지인 것이 적절하다고 여겨지기는 하지만―성육신한 예수님도 그대로 부르셨고― 그것이 인간적 의미의 남성성 때문은 아닌데 말예요.
그리고 성자 하나님께는 가장 주된 호칭 ‘예수’를 그대로 드리고, 성령 하나님께는 ‘사라유’라는 독특한 이름을 드리면서 그분의 인격들이 서로 동등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역할을 나누시고 자발적으로 순종(!)하시는지 그 선함과 아름다움을 가능한 표현하려고 애쓰기도 했죠. 실제로 꽤 잘 해냈다고 말해 주고 싶네요.
하지만 루이스가 영의 글을 접했다면, 다소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성역聖域을 건드리다니!”라고 말했을지도 몰라요. 단순함과 세밀함. 단순함을 추구하면 세밀함이 상당 부분 축소되고 세밀함을 추구하면 단순미가 사라지곤 하죠. 보다 단순한 형상화가 아무리 우리에게 얼마간의 도움을 줄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대상이 하나님을 축소시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또 아쉽지만 주님께서는 맥켄지와 함께했던 파파들과 동일한 계시 수준으로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 역사하지 않으신다는―이 또한 영과 친구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우리가 다 이해할 수는 없으나 선하고 기쁘신 그분의 결정입니다.― 생각 때문에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이 두 작품 둘 다를 ‘특히’ 좋아하시겠죠?

 

어쨌거나 저자들은 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맥켄지와 너무나도 공감할 부분이 많은 ‘실수투성이 우리들’이 그분을 향해 지니기 쉬운 오만과 편견(스스로 가진 것이든 주입된 편이든)을 조심스레 재조명합니다. 소소하고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우주적인 것들까지 골고루요. 여기에 초대된 독자들은 맥의 딸이자 어여쁜 소녀인 미시를 향한 순수한 애정으로 하나 되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맥의 여정에 따라나서게 되는 것이죠.
상황과 방법, 정도는 조금씩 다를지 몰라도 맥의 상실은 우리의 상실이며, 맥의 분노는 우리의 분노―적어도 한때는―입니다. 그의 건강하지 못한 생각들과 반응들은 우리의 것이며, 그것이 그를 둘러싼 이웃들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점도 우리와 동일해요. 맥이 조금씩 회복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 또한 첫 회복을 경험하거나 혹은 지난 회복의 순간을 떠올리며 감격하죠.
이러한 동행 속에서, 영과 친구들의 아름다운 초대는 결국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이뤄진 ‘화목의 사건’을 계속해서 ‘생각하여 보게’ 합니다. 이제 그만 찡찡거리고, 파파의 쪽지에 응답해야 해요(쪽지가 66권짜리 소책자로 이뤄져 있다는 점은 함정).
쪽지를 거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용서, 그 어려운 용서를 마주하게 되요. 원래 우리는 우리 힘만으로 뭘 못하지만 특히 할 수 없는 바로 그것이죠. 끊임없는 자기 대면. 그러나 대면에서 멈추지 않고 자기 용서의 문을 열 때, 우리는 비로소 이웃마저 용서하는 회복의 걸음을 걷게 되고 또 우리만의 ‘임마누엘 병원’에서 우리만의 ‘케이트’를 발견하게 되겠죠. 무엇보다 우리에게 감사한 일은 그 용서의 시작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입니다. 앞서가며 우리를 인도하는 파파처럼 말예요. 그래서 우리는 파파의 이 말에 반응할 수 있어요. “너의 용기를 보여 줘!(오두막의 파파는 랩도 합니다. ^^)”

 

저는 사라유의 대사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당신이 용서할 때마다 이 지구는 변해요.” 오두막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표현들은 매우 훌륭할 때도 있고 조금 아쉬울 때도 있는데, 이 표현은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무엇보다 사라유의 이미지는 보미 동생을 자꾸 생각나게 해서 마음이 쓰였죠. 실제로 이미지가 겹치는 부분들이 있었고, 그에게도 용서는 매우 실제적인 도전일 텐데 싶어서 말예요. 특히 겹치는 이미지에 대해서는 잘 표현하기 어려운데, 다음에 슬기 동생을 만나게 되면 서로 이야기해 볼 수 있겠죠. 이 책을 앞부분만 읽었을 때 그에게 추천했었는데 다 읽었을지 모르겠어요.
아까 ‘축소’로 표현했지만 이 이야기가 무척 잘 다뤄낸 부분이 있는 반면, 가시나무 떨기를 태우지 않고 타오르게 임하셔서 “네 발의 신을 벗으라.” 이르신 그분, 에스겔이나 다니엘, 요한 등에게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신 그분, 찬송을 받으실 그분의 일부 면모와 사역의 특성에 대해서는 미처 잘 담아내지 못한 부분들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아주’ 아름다워요. 잘 담아내지 못한 부분들보다는 잘 나타낸 부분들이 더 많고, 영과 그의 친구들은 이야기 내내 사랑과 용서의 숭고한 아름다움 앞에서 겸손하고 진솔해요. 특히 눈물 앞에서 그렇고요. 지난 성탄전야에 수 등과 넷이서 드린 작은 예배 가운데 허락하신 감격의 눈물이 생각나네요. 우리 모두를 매켄지가 그랬던 것처럼 작은 예수로 부르시는 주님께 기쁨의 찬송을 드립니다.
―참, 서연아. 좋은 책 빌려 줘서 고마워!

 


오두막

저자
윌리엄 폴 영 지음
출판사
세계사 | 2009-03-1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자신의 상처로 스스로 지은 집, 오두막사랑과 용서에 대한 이야기...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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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ne of Remn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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