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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자의 생활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김홍전 (성약,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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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청년부의 2부 순서 중 제가 맡은 주간에 세계관 연재를 진행하면서 저 스스로가 먼저 온전히 깨닫고자 펼쳐든지 벌써 8개월이 다 되어갑니다. 절반 정도까지는 일찍이 읽었던 것 같은데, 이런저런 경황으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기에는 긴 시간이 들었습니다.
'중생자의 생활'은 김홍전이라는 목사님께서 1970년 1월 첫 주부터 11회에 걸쳐 강단에서 설교한 내용을 다듬어 1985년 즈음에 출판하신 책입니다.
영어가 한문보다 우선시되는 요즘에 중생이라는 표현은 어색하기 그지없지만, 어느 어린이 찬송 가사를 떠올리면 좀 쉽게 다가올지 모르겠습니다. '돈으로도 못 가요 ... 거듭나야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세계관을 공부하다 보니 세계관의 특성 중 하나인 신국(하나님 나라)적 면모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다 보니 양용의 교수님이 쓰신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비롯한 책들과 함께, 그리고 그보다 우선해서 이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도 어느 한 곳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인지라(one of them) 이 시대 그리스도인의 평균 양상을 명확히 인식하기에는 한없이 모자라지만, 제가 속한 그룹에서 생활하면서, 특별히 리더로서 생활하면서 느낀 것은 맹목적 신앙을 가진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이를 마냥 비방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느낀 이상 병을 그대로 둘 수는 없으니 먼저 바로 깨닫는 노력을 하고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은 마음에 열심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광대하심과 예수님의 대신 죄를 짊어지심 등을 믿으면서 신앙이 시작되는 단계에 많은 사람들이 이르는 것이 참으로 감사한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믿음의 모양은 꾸준히 한걸음씩이나마 자라나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일 텐데 교회생활의 기간이 늘어나도 처음 알았던 단편적인 지식이 모두인 양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면 참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더욱 제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있는데 그렇게 정체된 신앙의 형제자매들은 그들 혼자 정체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인들에게 부적절한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지식만 가득 찬 신앙을 하나님께서 결코 기뻐하시지는 않지만, 인간적인 감정만 찬 신앙도 그것이 인간적인 기준에서 순수할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음은 매한가지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제가 지켜보면서 느낀 것은 그들이 특별히 말로써 안타까운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실제로 성경에 비추어 볼 때 얼마나 안타까운 모습인지 잘 몰라서 그럴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보통 성도들이 주로 그렇다 하면 자연스럽다 여기겠는데, 각양 중직을 맡은 이들도 너무도 쉽게 그런 모습을 보일 때 참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물론 본인의 수준보다 좀 더 큰일을 해나가면서 성장하는 경우가 곧잘 있습니다만 이것은 본인의 수준이 7~8이고 맡은 일이 9 정도 일 때 통하는 것입니다. 저는 맡은 일의 요구가 9라면 실제 수준이 5 정도에 머물면서 전진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하며 안타까운 상황을 본인의 시각에서 단정지어버리고 합리화하는 모습을 얼마나 자주 보는지 모릅니다.
물론 이 또한 저의 시각일 뿐이고 실제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가운데 제가 본 것보다 더 필연적이고 중요한 과정들일 수 있지만, 오랜 시간 볼 때 분명히 아닌 것도 종종 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밑바탕으로 나누고 싶었던 지식이 거듭남에 대한 지식이었습니다. 이 책을 쓴 김홍전 목사님도 같은 심정으로 이 연재설교를 준비하셨었습니다. 제가 이 땅에 태어나기 15년 전에 제가 근래에 느낀 마음을 가지고 설교를 쓰신 것입니다.
40쪽에 보면 이런 내용을 적으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 동안 하나님 말씀을 많이 듣고 많이 먹은 것 같은데 많이 먹었는가 어떤가를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위기가 있을 때에는 허망하게 넘어가는 것을 때로 보는 까닭입니다. 특수한 사명을 생각하기 전에 이 교회가 필요한 것은 가장 기본적인 기독교부터 바로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하 생략)'
만약 거듭남을 입었으나 그 자리에서 성장하질 못하고 오래 맴돌거나, 혹은 거듭남의 은혜를 아직 입지 못했는데 그런 모양으로 연기만 하고 살아온 분이 이 책을 마지막까지 찬찬히 읽는다면 심중에 많은 찔림과 성장을 얻을 것입니다. 아마 사탄은 할 수 있는 데까지 성경이든 이 책이든 이런 중요한 내용에서 막고자 하겠지요.

구원은 너무도 의미가 큽니다. 그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 보니 구원의 통로를 놓고 수많은 이단들이 생겨나기도 하고 잘못된 태도들도 생겨납니다.
저도 저 자신은 연약하지만 감히 고백하자면, 제게 구원은 거룩하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감사하고도 복된 관계가 회복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딸려온 선물꾸러미의 하나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어찌나 구원 그 자체에만 목을 매는지요. 구원받았다는 심증만 어떻게든 생기면 '아싸! 좋아라'하고 안심하고 그 자리에 안주하고, 옛 사람이 아닌 새 사람은 거기서부터 진정한 시작이라는 사실을 놓치는 일이 얼마나 비일비재한지요.
구원을 마치 BMW나 명품의류처럼 '가졌냐, 못 가졌냐'로만 다루는 일은 많으나 그 구원이 성경을 살펴보니 '과연 이렇게나 영광스러운 사실이더라' 하는 일이 너무나 적은 안타까움입니다.
영원히 살 수 있다 한들 신실하신 하나님과의 동행이 부재하다면 그 영원은 제게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영원히 누릴 은혜가 있지만 설사 하루라 할지라도, 영원히 하나님의 부재로 살거나 하루를 하나님과 동행해 살거나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저는 후자를 택하겠습니다.
늘 우리 사이에는 크고 작은 불균형과 안타까움이 있고 이것들을 기도로 간구함으로써 은혜 가운데 해결해나가야겠지만, 아직 갈 길이 먼 제 눈에 보이기로는 이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이것입니다.
구원이 하나님의 크나큰 은혜의 산물로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리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책은 그래서 구원을 얻도록 택함을 입은 거듭난 사람이라면 어떤 모양과 변화를 입게 되고 어떤 돌아봄이 있어야 하는지를 잘 설명해주는데 많은 애를 쓰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한 방을 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일상의 과정 또한 소중히 여기시는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애당초 유일무이하시고 가장 높으셔서 낮추임을 입으실 수가 없는 분이십니다. 제가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저도 물론 교회가 규모 면에서도 더 늘어났으면 좋겠고 성도도 늘었으면 좋겠지만, 좀 더 솔직히는 내 눈 앞에 있는 형제자매들이 더욱 온전함으로 나아가는 기쁨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그 일이 먼저 주님의 은혜로 나타난다면 나머지 성장은 자연히 따라오는 일이 될 것입니다. 순풍이 불어오면 배가 매끄럽게 나아가듯이...
아직도 저는 불완전하고 갈 길이 멉니다만, 하나님의 은혜에 저를 내어 맡길 때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심을 바라보며 나아가고자 합니다. 이 책을 마지막까지 읽은 와중에도 아직까지 제 삶에의 적용은, 함께 충분히 나눌 수 있기까지는 더 많은 에피소드들이 필요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늘 의지했던 노인 목사님의 귀한 글을 읽게 인도해주신 하나님과, 믿음의 선배인 미스터 쿠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먼저는 제가 속한 공동체에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의 역사가 늘 충만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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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ne of Remn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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